교회음악

백남 김연준장로

오렌지와 은하수 2010. 10. 31. 14:42

 

기독교신문 설립자 백남 김연준 박사의 신앙 행적들

 

 

청산에 살리라를 작곡자이자 한양대, 기독교신문 설립자인 백남(白南) 김연준 박사

 

 

국민가곡 청산에 살리라작곡자이자 한양대, 기독교신문 설립자인 백남(白南) 김연준(사진) 전 한양학원 이사장이 지난 7일 새벽 한양대 병원에서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14년 함경북도 명천에서 태어난 백남은 독실한 신앙인의 성품을 가지고 교육가와 음악가로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백남은 39년 한양대의 전신인 동아공과학원을 설립했다. 이어 48년 국내 최초의 사립 공과대학인 한양공대를 세웠고 1959년 종합대학인 한양대로 승격된 뒤 초대 총장에 취임했다 그는 한양여대, 한양대 사범대학 부속 중·고교, 한양초등학교, 한양여대 부속 유치원, 한양대의료원, 한양 사이버대를 설립·운영하는 등 교육 활성화를 위해 헌신했으며 한양증권, 백남관광 대한출판 등의 회사도 운영하는 경영능력을 보였다.

 

가곡 청산에 살리라로 대변되는 음악가로서의 삶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연희전문학교에서 현제명 교수를 사사한 뒤 1610여곡의 가곡을 작곡했으며 1979년 독일의 7개 도시에서 한국 음악의 밤연주회를 개최하고, 1981년에는 미국 카네기홀에서 자신이 작곡한 곡들을 연주하는 등 해외에서 14차례, 국내에서 18차례 발표회를 열었다백남은 무엇보다 자택에 명천교회를 세우고 장로를 지낸 부친의 영향을 받아 신앙인으로서 소명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서울로 올라와 학업에 매진하는 동안 새문안교회에서 신앙을 키웠으며 수원중앙침례교회에서 장로직을 안수 받았다. 그 같은 신앙심을 바탕으로 기독교신문을 창간했으며 대한일보 설립과 국제신문인협회(IPI) 이사 등 언론인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해나갔다. 뿐만 아니라 대한체육연맹 회장, 우정의 사절단 한국본부 총재 등 북한인권개선운동본부 총재 등을 맡으며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음악가적 재능과 신앙이 결집 된 백남은 찬송과 성가 작곡에도 조예가 깊었다. 찬송가 398어둠의 권세에서가 바로 백남의 손에서 태어났으며 210여곡의 성가도 발표했다. 빈소는 한양대 내 한양종합기술관 6층이며, 발인은 11일 오전 10시다. (2008. 1. 10. 크리스천투데이 / 송경호 기자)

 

한국교회 원로들이 김연준 박사에 바치는 글

 

우리 민족의 영원한 스승, 영혼의 구도자-조향록 목사

 

고 김연준선생님 영전에 심심한 조의를 드립니다. 선생님은 생애를 다하여 천년도 더 넘게 자란 거목(巨木)같은 한양학원을 세우시고 키워 오시며, 그 성장하는 위상을 두루 지켜보시다가 95년 생애를 마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알몸으로 왔다가 하루 길밖에 안 되는 나그네 인생을 잠시 살고 가는데, 선생님은 그 무슨 힘으로 이렇게도 큰 업적을 세워놓으시고 가십니까?

 

선생님은 선대(先代)로 부터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시고 자라시면서, 그 속 마음에 충전된 기독교신앙의 근력(根力)이 되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십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주일 하루만 예수 믿는 교인이 아니십니다. 선생님은 어린 시절부터 예수님이 너는 세상에 소금이 되라. 너는 세상에 빛이 되라는 예수님 말씀을 먹고 자라면서 안으로는 그가 생각하는 것, 그의 생활, 그 분이 하시는 일, 그의 이상 속에 예수의 마음이 녹아들게 하고, 밖으로는 그의 생애를 쏟아 부은 한양학원 등 모든 일에 예수의 심정이 구현되게 하려고 무진 애를 쓰고 노력해 오셨습니다. 선생님은 영원한 신앙의 순례자라는 진리를 몸으로 살아보자고 몸부림쳐 오신 영혼의 구도자이십니다.

 

그래서인지 선생님은 서울인구 천만 명이 뱉어낸 청계천 오물이 한데 몰아 한강으로 흘러들던 그 개울가 마지막 언덕 위에 한국지성 최고의 상아탑, 한양학원을 세워 새 역사창조의 산실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는 실로 운명에의 도전이요, 창조의 신비를 아는 신앙인만이 할 수 있는 비범한 용기였습니다.

 

한양학원은 폐허에서 일어나 세계로 뻗어 가는 한국의 상징이요, 주검에서 다시 살아나는 부활을 상징하는 한 편의 교향곡입니다. 선생님은 춘원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을 민족 교육의 실체로 실현시켰습니다.

 

선생님은 한 사람의 평신도로서 일생을 살아 오셨습니다만, 한국 기독계에서 어느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큰 일을 맡아 끈기 있게 밀고 나와 크게 발전시켜 놓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196512월 창간이래 올해 43주년을 맞이하는 <기독교신문>입니다. 기독교신문은 범 한국기독교계의 유일한 종합 보도매체로서 자리를 굳혀 놓았습니다. 선생님은 수년 전부터 그 신문에 사랑의 실천이란 고정칼럼을 두게 했습니다. 그 칼럼은 그 칼럼에 실리는 글들뿐만 아니라, 이제는 그 표제 사랑의 실천이 한국교회와 교인들 삶의 구호가 됐습니다.

 

선생님은 자신의 가슴속에서 열화와 같이 불을 뿜는 영혼의 열기를 총 3600편의 성가 및 가곡에 담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그 중 1820곡은 이미 출간되었고, 그 중에서 210곡은 성가곡으로 교회에서 예배드리는데 불리는 찬송가에 수록되었고, 또 성가대의 찬양 곡으로도 많이 불리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작곡 작사로 되어있는 청산에 살리라등은 온 국민의 애창곡이 됐습니다. 선생님의 찬양과 가곡들은 모두 선생님의 겨레사랑과 신앙중심에서 솟아 나온 영감의 실제들입니다.

 

선생님은 위대한 교육가요, 또 위대한 예술가이셨습니다. 선생님은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리는 것이다라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교리문답 제1항을 잘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교육경영까지도 하나님의 인간창조에 연속되는 인간공학으로서 그것을 창조적 예술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점을 확신했던 것으로 이해합니다.

 

오늘 선생님의 몸은 이 자리에서 떠나가시지만, 선생님이 전 생애를 쏟아 부은 유업들은 영원히 살아남아 우리와 우리 후손들에게 계속 큰 교훈을 주실 것입니다. 히브리서 112아벨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는 말씀과 같이, 선생님은 우리 민족에게 영원한 스승으로 계속 말씀으로 교훈을 주시고, 노래로 기쁨과 희망을 주실 것입니다.

 

나는 불멸의 업적을 남겨두고 가시는 선생님의 영전 앞에서 애도의 슬픔을 잠시 접고, 오히려 선생님이 지어주신 아름다운 찬양을 불러 영광스럽게 선생님을 전송하고 싶습니다. (조향록 목사. 초동교회 원로목사 전·한신학장)

 

 

사랑을 통한 변화 외친 구도자-정진경 목사

 

고 백남 김연준 박사님이 우리 곁을 떠나 하나님 곁으로 가셨습니다. 이 비통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김박사님은 일찍부터 우리나라의 척박한 교육 현실에 눈을 뜨시고 한양학원을 설립하고 인재를 양성하셨습니다. 이 인재양성으로 우리나라 근대화에 큰 발자욱을 남기시고 우리 곁을 떠나셨다는 것은, 저 한사람의 개인적인 슬픔을 넘어 우리 사회의 크나큰 손실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목사인 저는 김박사님의 영정 앞에 목 놓아 울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김박사님께서 생전에 <대한일보><기독교신문> 같은 언론 매체를 통해 기독교의 정신인 사랑을 우리 사회에 널리 펴는 데 온 정성을 다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강단에서 기독교의 진리를 설교한다는 저희들도 감히 해내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오늘의 한국 교회가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해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는 모습을 보면서, 김박사님을 잃은 저희들은 비탄한 심정을 가눌 길이 없습니다.

 

김박사님은 생전에 늘 주장하셨습니다. 사랑을 실천해야 교회가 바로 서고, 교회가 바로 서야 사회가 바로 선다고 말입니다. 단순한 듯 보이지만 심오하기 이를 데 없는 이 가르침이야말로, 지금 한국 교회가 반드시 마음에 새기고 실천해 나가야 할 경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김박사님은 그토록 큰 가르침을 저희에게 주신 구도자셨습니다.

 

김박사님은 저희들에게 사랑이라는 큰 가르침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음악까지 남겨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지난 1984, 한국 교회가 감격의 선교 백주년을 맞았을 때, 박사님께서는 고 한경직목사님이 쓰신 사랑의 실천가사에 직접 곡을 붙여 선교 백주년 기념 찬송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 때 기념식장에서 김박사님이 작곡하신 기념 찬송을 부르며 가슴 벅차했던 순간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김박사님이 작곡하신 청산에 살리라등 주옥같은 가곡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적시고 있습니다. 한국인뿐만 아니라 일본과 독일 같은 외국인들 까지도 감동시킨 김박사님의 아름다운 노래로만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김박사님이 가신 자리가 너무나도 커보이기만 합니다.

 

김박사님, 박사님이 걸어오신 길은 누구도 쉽게 가지 못한 길이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아직 어려운 지경에 있을 때, 학교를 세워 사회의 동량들을 키워 내셨고, 우리 사회의 가치관이 아직 제대로 세워지지 못했을 때, 사랑의 실천을 통해 밝고 따뜻한 가치관이 자라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음악을 통해 사람들의 가슴에 감동을 전해 주셨습니다. 이 세상 누구도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한 그 많은 일들을, 김박사님께서는 훌륭히 해 내시고 홀연히 저희들 곁을 떠나가셨습니다.

 

김박사님, 이제 저희들은 박사님께서 남기신 커다란 업적들을 생각하며, 부지런히 그 뒤를 따라가겠다고 다짐하고 또 실천하겠습니다. 김박사님, 세상의 일은 이제 저희 후배들에게 맡기시고 편히 잠드십시오. (정진경 목사.전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신촌성결교회 원로목사)

 

 

백남 김연준박사 약력

생년월일 1924220일생

학력

19393월 연희전문학교(연세대학교)문과 졸업

19613월 명예법학박사(연세대학교)

19725월 명예법학박사(캐나다 윈저대학교)

19732월 명예문학박사(미국 서던 일리노이 주립대학교)

19796월 명예법학박사(자유중국 국립정치대학교)

198212월 명예음악학박사(미국 센추럴 미시간 주립대학교)

19849월 명예신학박사(미국 훼이쓰 신학대학교)

19875월 명예철학박사(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교)

19883월 명예음악학박사(불란서 르앙대학교)

19902월 명예법학박사(일본 동해대학교)

19918월 명예이학박사(미국 오레곤공과대학교)

 

학교설립

19395월 한양학원 창립 동 이사장 ()

19395월 한양대학교 창립 동 총장

19459월 한양중.공업고등하교 창립

19602월 한양대 사범대학 부속 중.고등학교 창립

19663월 한양초등학교 창립

19725월 한양대학교 의료원 창립

197412월 한양여자대학 창립

19993월 한양여대부속유치원 창립

20023월 한양사이버대학교 창립

 

음악경력

19376월 제1회 김연준독창회(서울공회당)

19619월 김연준 작곡집 제1회및 음반출판

197210월 제1회 작곡발표회(서울 시민회관)

19754월 제2회 작곡발표회(한국가족의 밤, 일본 동경)

19761월 한국음악협회 명예이사장()

19795월 제3회 작곡발표회(서독, 퀄른, 뒤셀 도르프, , 이지론, 뤼빙겐 뭔헨 등 7개 도시)

19814월 제6회 작곡발표회(미국 카네기홀)

19848월 김연준 성가곡집 제16집 음반 출판1

19883월 제9회 작곡발표회(프랑스 르앙대학교 초청)

19903월 한국작곡가협회 상임고문()

19905월 한국작곡가 협회 고문()

19929MBC제정 제12회 가곡공로상

19989월 제2회 작곡발표회(서울 세종문화회관)

20034월 제26회 작곡발효회(서울 호암아트홀)

 

사회경력

196010월 대한일보사 창립 동 사장

19611월 국제신문인협회(IPI) 이사

19621월 한양개발주식회사 명예회장()

196512월 기독교신문 명예발행인()

19683월 대한체육연맹 회장

19702월 백남관광주식회사 회장()

19751월 대한출판사 회장()

197512PTP한국본부 총재

19825월 수원중앙침례교회 명예장로 추대

198310월 우정의 사절단 국제자문위원회 의장

19842월 국제인권옹호한국연맹 명예회장 ()

199412월 북한인권개선운동본부 명예총재 ()

 

저서

19708사랑의 실천

19835백남문집

19925월 백남김연준박사 사상문집 (2)

19995월 백남김연준자서전사랑의 실천

20011월 김연준시집청산에 살리라

 

상훈

19795월 서독 튀빙겐대학교 개교 오백주년 기념 음악대상 (작곡부분) 수상

19917월 이탈리아 문화공로훈장

199612월 국민훈장무궁화장 수상

199612월 금관문화훈장 수상20016월 연문인상 수상 (2008. 1. 11. 크리스천투데이)